- AI가 파괴하는 컨설팅의 구조, 그리고 그럼에도 컨설팅이 존재할 이유
언제나처럼 인스타그램 릴스를 뒤적이며 여러 브랜드와 디자인, 컨설팅 관련 릴스를 보던 중 눈에 들어온 한 영상이 있었습니다. 하버드 출신들을 인터뷰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한 하버드대 교수의 이야기였는데, 앞으로의 직업인 상(像)이 '단일한 직업'과 '그 바깥의 삶'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Work-Life Balance'에서, 여러 직업과 삶의 영역을 포트폴리오처럼 배분하는 일명 '포트폴리오형 라이프'로 변하고 있다는 주제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MBA 지원자가 입학 설명회에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이야기하던 교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컨설턴트가 되는 대신 창업을 해야 하나요? 리스크가 있지 않나요?" 교수의 답은 이랬습니다. 컨설팅이 안전하다는 믿음은 환상에 가까우며, AI의 발전으로 컨설팅 회사의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죠. AI가 초급 분석가와 MBA 컨설턴트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신규 채용과 승진 기회가 줄어들고, 업무의 내용도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AI 시대의 컨설팅 예측이겠지만, 정작 흥미로운 것은 영상이 아니라 댓글창이었습니다. 이 산업을 둘러싼 거의 모든 논점이 거기 압축되어 있었고, 그중 몇 개는 논쟁의 진짜 축이 어디 있는지를 본인들도 모르는 채 정확히 짚고 있기도 했습니다. "딜로이트 호주 오피스가 AI가 모든 일을 다 해 줄 수는 없다던데?"라거나 "PwC가 AI로 실질적인 가치나 비용 절감을 이룬 회사가 절반도 안 된다던데?"라는 이야기는 "그거 누가 쓴 리포트더라?"라는 질문과 "걔네 AI 제대로 쓸 줄도 모르잖아"라는 말로 맞받아쳐지고, 컨설팅에 들어가던 돈이 이제는 AI 토큰 비용으로 쓰여야 한다는 주장도, "그래도 빅4 컨설턴시는 여전히 사람을 많이 뽑던데?"라는 반문도 있었습니다.
그중 한 댓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야말로 컨설턴트들의 실력이 까발려질 기회라며, 자신이 MBB 컨설턴트를 고용해 본 경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글이었습니다. 비싼 돈 주고 고용했더니 그가 한 일이라곤 자기가 한 일보다 훨씬 더 비싼 비용을 청구해 놓고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것뿐이었다는 것이죠. 거기에 달린 답글이 압권이었습니다.
"But you can't sue AI."
이 시점에서 제가 즐겨 보는 또 다른 릴스도 생각납니다. Orbi.jobs가 운영하는 Orbi_the_alien 계정은 오늘날 회사에서, 특히 IT 업종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이크로소프트 팀즈의 채팅 화면을 빌어 풍자하는 곳인데, 여기 그려지는 컨설팅의 모습도 앞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AI를 쓴 덕에 같은 내용을 제안하는 빅4 컨설팅 펌, 그 와중에 최저가격을 기준으로 내려지는 회사의 결정, 그리고 사실 COO에게 필요했던 것이 자기 선택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일이 잘못되었을 때 핑계를 댈 수 있는 존재였다는 결말까지. 앞선 두 댓글과 이 영상이 하는 이야기는 결국 하나입니다. 컨설팅을 사는 쪽은 자신이 사는 것이 정보가 아니라 절차적 알리바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알리바이가 성립하려면 고소당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것이죠.
어쩌면 컨설팅에 대한 비판의 흐름도, AI가 컨설팅 업 속에서 실제로 무너뜨리는 것도, 그리고 전환의 방향도, 이 솔직한 인정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컨설팅에 대한 비판의 흐름
컨설팅이 진짜 가치를 만들지 못한다는 비판은 예전부터 있어 왔고, 누군가는 그래서 '컨설팅은 가짜 직업이다'라고까지 말합니다. 늘 한 덩어리로 취급되지만, 실제로는 성격이 다른 세 개의 고발에 가깝습니다.
첫째는 '기반이 되는 이론의 문제'입니다. 매튜 스튜어트는 <위험한 경영학(Management Myth)>에서 프레드릭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 관리법'부터 메이요의 '호손 실험', 마이클 포터의 '전략 이론', 톰 피터스의 '위대한 기업의 비밀'까지 이어지는 경영학의 계보를 해체하는데, 그는 이 이론들이 반증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과학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과학적 관리법은 과학이 아니라 비즈니스이며, 승자와 나머지를 가르는 것은 독립적으로 검증 가능한 전문성이 아니라 물건을 파는 능력이라는 것이죠. 스튜어트의 고발은 그 자신이 맥킨지와 AT커니 등 세계적 컨설팅 기업에서 오래 일한 경력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자기 고백이기도 한데, 그는 자신이 공동 창업한 컨설팅 펌에서 데이터가 말을 듣지 않을 때 숫자를 지어냈다고도 말한 바 있습니다.
둘째는 '비용 대비 전문성의 문제'입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와 로지 콜링턴의 <The Big Con>은 컨설팅 펌이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의 과제, 예컨대 세금이나 기후 변화, 사회적 책임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드러내는 기만과 도덕적 모호함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컨설팅 펌은 스스로 주장하는 것만큼 지식이나 전문성이 축적되어 있지도 않고, 현실적이지 않은 목표를 좇게 만들며, 보이는 것보다 비싼 값을 치르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고객 조직이 스스로 역량을 기르는 것까지 막는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고발은 가장 짧으면서 가장 치명적인데, 바로 '책임의 문제'입니다. 역시 같은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이들이 자신의 전문성과 계약의 결과물인 컨설팅 보고서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이 책의 한 서평에서도 저자들이 지향하는 공공가치론에 대한 설득은 약하다고 보면서도, 컨설턴트가 자기 조언이 틀렸을 때의 리스크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만큼은 크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앞서 본 풍자물에서도 여러 차례 그려지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문제를 이렇게 나눈 이유는, 그래야 이 문제들이 지금, 그리고 가까운 미래의 AI 시대에 어떻게 변할지, 그래서 어떤 문제가 컨설팅에 치명적일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결국 전문성과 과학의 문제이기 때문에, AI는 오히려 이 지점에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경영학 이론과 분석의 재현성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것을 더 전문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에 AI는 분명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클라이언트 또한 AI를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고, 컨설팅을 자기 역량으로 소화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얻거나, 아예 AI를 강화하는 쪽으로 역량화할 수 있을 테고요.
그러나 '책임의 문제'만큼은 AI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AI 때문에 이 문제는 전면적으로 떠오를 것이고, 이미 그렇게 되어 가는 징후도 엿보입니다.
컨설팅이 진짜로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가
2013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혁신의 벼랑 끝에 선 컨설팅(Consulting on the Cusp of Disruption)>이라는 기고문이 실립니다. 저자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컨설팅을 지켜 온 것이 불투명성과 민첩성이라고 말합니다. 클라이언트는 자기가 갖지 못한 역량을 사기 때문에 그 성과를 판단할 수 없고, 컨설팅 펌은 고정된 자산이 없으니 자원에 발목을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나 정보화 시대의 도구들이 이 방패를 해체하고 있으며, 전통적 컨설팅 회사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이제 기본적인 분석 도구나 정교한 시스템으로 데이터를 다루며 한때 컨설턴트가 독점했던 통찰에 닿을 수 있게 되었고, 그 힘이 컨설팅을 재편하기 시작했다고 선언합니다.
이 글이 AI가 주목받기 10년도 더 전에 쓰였다는 점은 짚어 볼 만합니다. 기고문 속 '정보화 시대의 도구'를 AI로 바꿔 놓으면 그대로 오늘의 해석이 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예측대로 되었을까요? 애석하게도 그렇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그 사이 맥킨지와 BCG, 베인은 모두 규모를 두 배 가까이 불렸습니다. BCG는 2025년 144억 달러로 22년 연속 성장을 기록했고, 맥킨지는 2023년 160억 달러를 마지막으로 자사의 이윤 공개를 중단했습니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대안으로 지목했던 프리랜서 플랫폼은 니치에 머물렀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자영업자들의 대안 정도로만 쓰이고 있습니다.
폴 밀러드라는 작가가 2026년 3월에 이 분석에 대해 사후적으로 정리한 글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크리스텐슨이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사는지를 잘못 읽었다는 것입니다. 합병 이후의 시스템 통합 같은 일에 맥킨지를 부르는 CEO는 그들의 전문성이나 기술, 축적된 정보를 사는 게 아닙니다. "맥킨지와 같은 거대 컨설팅 펌이 이 상황을 검토했다"는 사실을 이사회에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사는 것이죠. 수백 건의 유사한 딜에서 나온 패턴 인식을 사고, 이사회 회의실에서 가장 신뢰받는 이름을 채용했다는 일종의 커리어 보험을 삽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CEO들도 귀찮고,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만 하는 존재는 아니니까요.
이것은 앞서 본 댓글창에서 누군가 "그냥 체크리스트 몇 칸만 채우면 된다"라고 말하거나, 풍자 영상 속 인물이 "내가 원하는 건 이미 알고 있고, 나는 그냥 핑계를 댈 존재가 필요할 뿐이야"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더 노골적으로, 어떤 댓글은 이것을 'Blame-as-a-Service'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컨설팅을 필요로 하는 일은 언제나 고도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책임을 배분하는 구조가 아니라 희석하는 구조였다는 것을,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 알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컨설팅이 '가치를 만들지 못한다'는 말은 틀린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의사결정자가 결정의 하방을 혼자 지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가치, 컨설팅은 줄곧 그 가치에 값을 받아 왔는지도 모릅니다.
컨설팅 브랜드 값 상실의 시대
물론 이 말이 AI의 위력을 과소평가하거나, AI가 컨설팅 업계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며 "컨설팅은 어디까지나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모든 판매의 기본은 파는 것이 물건이든 서비스이든 비싸고 희소하거나, 어떤 이유로든 직접 만들어 내기 어려울 때 성립하며, 이는 컨설팅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컨설팅은 분석과 알리바이의 합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분석의 가격이 AI로 인해 0에 수렴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럴듯하고 방어 가능한 MBA 수준의 보고서를 이제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주니어 컨설턴트들을 모아 키노트 노가다를 할 필요도, 어디 있는지 모를 데이터와 시장 인사이트를 놓고 씨름할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결국 '알리바이'뿐입니다.
그 알리바이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누구나 맥킨지가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가를 설명하려 들면 금세 막힙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 온 이 '브랜드 값'의 정체, 그들의 컨설팅을 자연스럽게 검증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그 구조를 짚어야, 지금 컨설팅에서 깎여 나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더 정확히 보일 것입니다.
우선 생존 편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컨설팅 펌의 전문성은 대개 그들이 홍보를 위해 만든 자료에 근거하거나, 그들이 내세우는 실적, 그리고 그런 실적을 오래 쌓아 왔다는 역사를 전문성으로 치환한 설명에 기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내용이 전부 거짓이라거나 그 안에 정말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컨설팅을 따랐을 때의 결과뿐이고, 반대로 갔을 때 어떠했을지는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구조적으로 반증이 불가능한 것이죠. 제안서를 놓고 평가를 한다고 해도 이는 크게 완화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사람이 내리는 평가이고, 평가 내용과 상관없는 인지적 이유로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으니까요.
거기에 컨설팅 펌에게는 좋은 핑계도 있습니다. 결과가 나쁘면 다른 요인 탓이고, 좋으면 그 컨설팅 덕분입니다. 그러니 컨설팅 펌이 틀렸다는 명제는 적어도 컨설팅을 필요로 하는 입장에서는 증명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깎이지 않는 평판은 쌓이기만 하고, 어느 순간 너무 커져서 반박을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운 데까지 간 것이죠.
또 다른 근거는 그들의 구성원에 있습니다. 아이비리그 상위권에서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뽑은 수재들이 최상의 지성과 전문성으로 만들어 낸다는 설명만큼 매혹적이고 직관적인 것은 없습니다. 한 꺼풀 벗겨 보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좋은 컨설팅을 할 것이라는 믿음은 어쩌면 오늘날 도마에 오른 능력주의의 신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여전히 '잘 팔립니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똑똑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거기 들어가기를 갈망하게 만듭니다. 똑똑한 사람이 맥킨지에 지원하는 이유는 맥킨지가 권위 있기 때문일 테니까요. 권위가 지원자를 모으고 낮아진 선발률이 다시 권위의 증거가 되는 순환의 고리 안에, 정작 조언의 품질이 들어올 자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형 컨설팅 펌 출신이라는 것이 곧 경영의 전문가로 여겨져 여러 기업의 고위직으로 채용되는 현상도 있습니다. 오늘날 맥킨지는 현직 포춘 500 CEO 18명, 전 세계로 넓히면 28명을 배출했고 이는 어느 기업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C-suite 아래로 내려가면 더 많겠죠. 그러니까 맥킨지를 사는 쪽 회의실에 맥킨지 출신이 앉아 있습니다. 그에게 맥킨지의 권위를 지키는 일은 자기 이력서의 값을 지키는 일과 같죠. 이 구조는 결국 이름값으로 이름값을 지키는 일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AI가 이 구조마저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AI는 검증의 불가능성과 검증에 드는 시간을 함께 줄입니다. 누구나 비교할 만한 수준의 분석을 즉시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면, 맥킨지의 제안서가 다른 선택지보다 얼마나 나은지를 실제로 따져 볼 수 있고 그 안의 오류도 전보다 쉽게 짚어낼 수 있게 됩니다. 반증의 공간이 열리는 것이죠.
두 번째 근거도 함께 무너지고 있습니다. 수재를 뽑는다는 사실이 전문성의 증거로 쓰였는데, 정작 그 수재들에게 시킬 일이 AI로 인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싼 파트너 소수가 값싼 주니어의 넓은 피라미드 위에 서 있는 구조에서, 그 피라미드의 바닥은 공교롭게도 AI가 가장 잘하는 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영국 빅4의 졸업생 채용은 KPMG가 1,399명에서 942명으로 29% 줄었고, 딜로이트가 18%, EY가 11%, PwC가 6% 줄었습니다. 회계 분야의 신입 채용 공고 자체가 전년 대비 44% 감소했고, EY는 3년 연속으로 입사일을 미뤘습니다. 맥킨지 역시 인원을 4만 명대로 되돌리는 중입니다.
여기서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뽑는 자리가 줄면 경쟁률은 올라갑니다. 숫자만 보면 권위가 더 단단해 보이는 것이죠. 그러나 그 수치가 가리키는 것은 더 이상 그들이 얼마나 뛰어난가가 아니라,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일이 얼마나 줄었는가입니다. 권위의 증거로 쓰이던 지표가 어느새 수요 감소의 지표로 바뀌어 있는 셈입니다. 어떤 댓글은 이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주니어를 뽑지 않으면 10년 뒤의 파트너는 어디서 나오느냐고, 플랑크톤이 멸종하면 나머지는 시간문제일 뿐이라고요.
결국 남는 것은 이름값으로 이름값을 지키는 구조, 그 하나뿐입니다.
증강 모델이 통하지 않는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AI의 빠른 일 처리 능력과 컨설팅 펌의 전문성을 합치면 되는 것 아니냐고, AI가 만든 결과물을 전문성 있는 컨설턴트가 직접 검토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이 상식적인 해법이 왜 잘 작동하지 않는지를 보여 주는 실험이 있습니다.
2023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와튼, MIT의 연구진이 BCG와 함께 758명의 컨설턴트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AI가 잘하는 영역에 속하는 18개 과제에서 GPT-4를 쓴 그룹은 과제를 12.2% 더 많이, 25.1% 더 빠르게 끝냈고 블라인드 평가에서 40% 이상 높은 품질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AI가 잘 못하는 영역으로 의도적으로 설계된 단 하나의 과제에서는, AI를 쓴 그룹의 정답률이 AI를 아예 쓰지 않은 그룹보다 19%p 낮았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도구를 들고, 같은 주에 한 일입니다. 연구진은 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들쭉날쭉한 프론티어(jagged frontier)'라고 불렀습니다. 문제는 이 선이 결과물 위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잘 만들어진 장표는 선의 어느 쪽에서 왔든 똑같이 잘 만들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더 곤란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후속 연구에서 연구진은 경계 밖 과제를 풀며 AI의 답을 검증하려 시도한 참가자들의 대화 기록을 분석했는데, 사람이 사실을 확인하고 오류를 지적하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주문했을 때 모델은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대신 설득을 강화했습니다. 사과하고 수정한 다음, 더 많은 근거와 더 정연한 비교표를 붙여 원래의 결론을 다시 내놓은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설득 폭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AI의 환각이나 통제를 벗어난 실행 시도 같은 오류가 이제는 어느 정도 대중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AI를 전면적으로 쓴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비전문성을 상징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컨설팅 펌은 곤란한 자리에 놓입니다. 이제 AI를 쓰지 않으면 가격과 속도를 맞출 수 없고, 썼다고 밝히면 전문성을 의심받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은 쓰되 말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쓴다고 말할 수 없는 도구에는 규율이나 규칙을 붙일 자리가 없습니다.
2025년 딜로이트 호주의 사례가 그 자리를 보여 줍니다. 이들은 호주 고용노동관계부에 복지 시스템의 자동 제재 프레임워크를 검토하는 44만 호주달러짜리 237페이지 보고서를 납품했습니다. 그런데 시드니 대학의 한 연구자가 이 보고서에서 존재하지 않는 논문 인용을 발견했습니다. 실존하는 교수의 이름을 단 가짜 참고문헌, 연방법원 판결문에서 존재하지 않는 판사를 출처로 삼은 인용구가 나온 것이죠. 딜로이트는 최종 회차 대금을 환불했고, 수정본에는 OpenAI를 사용했다는 문장이 뒤늦게 추가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두 가지 반응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는 "아직 AI는 안 돼"이고, 다른 하나는 "컨설팅 펌이 그런 일을 하다니"겠죠. 이 두 반응이야말로 앞서 말한 컨설팅 펌의 곤란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지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이 소동 이후에도 보고서를 받은 호주의 해당 부처는 보고서의 실질과 권고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습니다. 근거가 조작되었다고 드러났는데도 결론은 살아남은 것이죠. 발주한 쪽에서 보면 알리바이는 무너지기는커녕 설계대로 작동한 셈입니다. 문제가 생겼고, 책임을 물을 상대가 있었고, 돈을 돌려받았으며, 하려던 일은 그대로 진행되었으니까요.
그러니 이 사건은 AI가 아직 멀었다는 증거로도, 컨설팅이 끝났다는 증거로도 읽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앞에서 한 이야기를 강하게 뒷받침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근거가 가짜로 밝혀져도 권고가 남는다면, 애초에 그 보고서에서 산 것이 데이터나 분석 자료가 아니었다는 뜻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딜로이트는 돈을 돌려주었고 이름에 흠집을 냈습니다. 저당 잡혀 있던 것이 실제로 집행된 것입니다. AI에게는 집행할 저당이 없습니다. 돌려줄 돈도, 깎일 이름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컨설팅은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전환의 방향은 '지식을 파는 일에서 의사결정 구조를 파는 일로' 정도의 한가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앞서 보았듯 컨설팅은 이미 오래전부터 의사결정의 구조를 팔아 왔기 때문입니다. 바꿔야 하는 것은 그 구조가 작동하는 방향입니다. 책임을 흩어 놓아 아무도 지지 않게 만드는 구조에서,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적어 두는 구조로 말이죠.
첫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결정의 기록을 납품하는 일입니다. 최종 권고안이 아니라 그 권고에 도달한 경로 자체를 산출물로 삼는 것이죠. 어떤 가정 위에 서 있는지, 어떤 대안이 검토되었고 왜 탈락했는지, 무엇이 관측되면 이 결정을 되돌려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부분이 모델의 출력이고 어느 부분이 사람의 판단인지를 적어 두는 일입니다. 프론티어의 위치가 결과물 위에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드러나게 만드는 장치 자체가 상품이 될 수 있습니다. 딜로이트 호주의 보고서에 끝내 제때 붙지 못했던 문장이 바로 그것이기도 하고요. 앞서의 댓글창에서 한 실무자가 비슷한 이야기를 노동의 언어로 하기도 했습니다.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장표와 모델을 만드는 일에서 "에이전트를 관리하고 출력을 감사하는 일"로 바뀔 것이고, 같은 예산에 대한 기대치가 훨씬 높아지므로 오히려 사람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둘째는 역량을 남기고 나오는 일입니다. 마추카토의 비판을 정확히 뒤집는 방향이죠. 다음번에는 클라이언트가 우리 없이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종래의 모델에서 이것은 자기 파괴에 가까웠지만, 반복되는 분석의 값이 0으로 수렴하는 시장에서는 어차피 반복 매출이 지켜지지 않습니다. 남길 수 있는 것은 그 조직의 판단하는 근육이고, 그 근육을 설계한 사람은 다음의 어려운 결정에도 다시 불려 오게 됩니다.
이 전환의 형태를 미리 보여 준 것이 팔란티어가 만든 FDE(Forward Deployed Engineer) 모델입니다. 엔지니어가 클라이언트 조직 안으로 들어가 길게는 몇 달씩 상주하면서, 그 조직의 실제 업무와 데이터를 익히고 그 환경 안에서 직접 만들어 내는 방식입니다. 납품물이 권고안이 아니라 그 회사 안에서 돌아가는 무언가인 것이죠. 최근 AI 기업들이 앞다투어 같은 직군을 만든 이유도 비슷할 것입니다. 모델을 조직에 붙이는 일은 멀리서 보고서를 써서 되는 일이 아니라, 그 조직이 일하는 방식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눈여겨볼 것은 이 방식에서는 틀린 것이 곧바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컨설팅의 브랜드 값을 떠받쳐 온 것이 반증 불가능성이었다면, 클라이언트의 환경 안에서 돌아가는 물건은 돌아가거나 돌아가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평판이 깎이지 않던 구조에서 매일 깎일 수 있는 구조로 내려오는 일이기도 합니다.
셋째는 하방을 함께 지는 일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앞의 두 가지는 결국 수사에 그칩니다. 성과에 연동되는 과금, 리스크를 나누는 계약, AI 사용에 대한 명시적인 책임 배분 같은 것들이죠. 앞서 본 세 번째 고발, 그러니까 컨설턴트가 조언의 리스크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한 유일하게 실질적인 대답이기도 합니다. 시장도 이미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올해 1월 맥킨지가 AWS와 설립한 조인트 벤처는 클라이언트의 임팩트를 전제로 한 성과 연동 과금을 내걸었고, 댓글창에도 "시간과 투입 인력으로 받는 모델은 끝났고 다들 성과 기반 계약을 팔고 있다"는 관찰이 있었습니다. 차별점이 아니라 기본 조건이 되어 가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이 글은 어디서 틀릴 수 있는가
앞서 과학적 방법론을 운운했으니 이 글의 주장도 반증 가능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아픈 반론 셋은 공교롭게도 전부 맨 처음 이야기한 댓글창에 이미 있었습니다.
우선 책임을 질 사람을 길러낼 방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밀러드의 분석을 따르자면 상위 펌의 진짜 상품은 산출물이 아니라 2~4년간 특정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소통하도록 훈련된 사람인데, 그 훈련은 장표를 만들고 모델을 돌리면서 이루어집니다. 앞서 말했듯 AI가 타격하는 것이 정확히 그 부분이죠. 저는 '출력을 감사하는 사람'을 새로운 신입의 일로 제시했지만, 사실 출력을 감사할 수 있는 판단력은 원래 출력을 직접 만들어 보면서 길러지기 마련입니다. 만들어 본 적 없이 감사만 하는 사람을 어떻게 길러낼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 제대로 AI를 감사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답을 모르겠고, 산업도 아직 답을 내놓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구조를 팔겠다는 쪽에 정작 자기 구조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컨설팅 펌 내부 프로세스가 얼마나 구식인지 모를 것이다, 수백만을 받고 남의 회사에 조언하면서 자기들은 회의 하나 잡는 데 사흘이 걸린다"는 댓글에 70개 가까운 공감이 달렸습니다. 맥킨지가 올해 3월 내놓은 AI 신뢰도 조사가 이 아이러니를 완성합니다. 약 500개 조직을 들여다본 그 보고서는 AI를 만들어 내는 기술 역량이 그것을 통제하는 감독 구조보다 대략 두 배 빠르게 달리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딜로이트 호주의 사례는 같은 병이 자문사 안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자기가 앓고 있는 병의 처방전을 파는 회사를 누가 사겠습니까?
구조를 만드는 일 자체도 AI가 할 수 있습니다. 프리모템이나 레드팀, 악마의 변호인, 선택지 생성, 체크리스트의 실행은 전부 AI 모델이 싸게 해내는 일입니다.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능력은 방어선이 되지 못합니다. 어쩌면 크리스텐슨의 예측이 이번에는 맞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현직 컨설턴트의 반론이 하나 더 붙습니다. "누구나 문제의 답은 찾을 수 있다. 클라이언트가 자기 문제가 뭔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한 내 일자리는 안전하다." 절반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클라이언트는 자기 문제를 말로 표현하지 못할까요? 머리가 모자라서인 경우보다, 조직 안에서 그 문제를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금지되어 있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사업부장의 결정이 실패했다고, 3년째 밀고 온 전략이 틀렸다고, 내부자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외부인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컨설팅이 존재할 이유
그렇다면 문제를 정의하고 구조를 만들어 내는 능력조차 결국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리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세 반론을 모두 통과하고 남는 것이기도 합니다.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일과 그 프로세스를 힘 있는 사람에게 관철시키는 일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반대 의견을 말할 자격을 누가 가지는가. 임원이 반박당하는 자리를 누가 만들 수 있는가. 틀렸을 때 손실을 누가 감당하는가. 이것들은 분석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고, 모델에게는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EU AI Act 14조는 AI에 대한 인간의 감독이 '권한 있는 담당자'에 의해, 추적과 되돌림이 가능한 구조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누가 그 자리에 설 것인가가 취향이나 기능적 필요가 아니라 법으로 적힌 요건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컨설팅에서 끝내 대체되지 않을 핵심은 지식도, 진단도, 프로세스 설계도 아닐 것입니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외부자의 자격, 그것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파는 회사는 아직 거의 없습니다. 하방을 나누겠다고 말하는 일과 그것을 계약서에 적어 넣는 일은 여전히 다른 일이니까요.
결국 그 댓글이 다섯 단어로 이미 다 말했던 셈입니다. 고소할 수 없는 상대에게는 책임을 맡길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컨설팅 펌이 그 방향으로 기꺼이 뛰어들 준비가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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