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언자부터 직접 경영까지, AI를 통한 경영 가치 창출의 가능성
2026년 3월 중순, 국내외 게임 업계의 주목을 받은 판결이 하나 나왔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2021년, 크래프톤은 게임 <서브노티카>를 만든 언노운 월즈 엔터테인먼트를 5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후속작을 정해진 기간 내에 성공적으로 발매할 경우 최대 2억 5천만 달러의 언아웃 보너스를 개발진에게 지급하는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크래프톤이, 2025년에 발매 예정이었던 <서브노티카 2>의 발매를 1년 연기함과 동시에, 언노운 월즈 엔터테인먼트의 CEO와 창업자 두명을 해고하면서 발생했습니다. 해고된 이들은 크래프톤이 2억 5천만달러를 지급하지 않기 위해 고의로 게임 개발을 방해하고 자신들을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3월 16일, 미국 델라웨어 주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CEO들을 다시 복귀시키고 보너스 지급 계약 기간도 2027년까지 연장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 쯤 되면 흔한 언아웃 분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결정이 나오는 데 꽤 중요한 근거가 사실 하나가 따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크래프톤의 대표가 AI에게 해고와 회사 장악 방안을 물었다는 것입니다. 대표는 ChatGPT에게 언아웃을 주지 않을 방법을 물었고, ChatGPT는 '취소하기 어렵다'고 원론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이후 협상이 결렬된 상황을 다시 가정해 물었고, 그러자 ChatGPT는 경영권 탈취 방안 및 시나리오 로드맵, 직원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쏟아냈습니다. 법원은 대표가 이 답변에 따라 한 달에 걸쳐 "AI가 건넨 권고안의 대부분을 따랐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을 알게 되자 제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첫째, 'AI의 답변은 어떠한 법적 구속력도 책임도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챗봇들은 화면 아래에 "실수할 수 있으니 중요한 정보는 직접 확인하라"는 내용을 면책용으로 달아놓기는 하지만,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AI가 가짜 판례를 가져온다거나, 사용자의 의도에 과하게 동조하여 잘못된 답변을 내놓는 상황을 지적해 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심지어 이 대화는 업무 과정에서 만들어진 회사의 기록으로 취급되어, 디스커버리 절차에서 스스로에게 불리한 증거로 남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이게 가장 중요한 지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자들은 지금 AI에게 묻고 있고 또 누군가는 이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실행했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죠.
모두가 그렇듯, 경영진들도 AI에게 묻고 있다
일라이 릴리의 데이브 릭스는 2025년 11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자신의 AI 사용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참석하는 모든 회의의 매 순간, 최소한 한두 개의 AI를 돌리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요." 심지어 모델 간의 장단점에 대한 비교적 구체적인 증언도 나왔는데, 예를 들어 ChatGPT는 너무 말이 많아서 별로고, 클로드와 그록이 더 간결하고 출처 인용이 확실해서 좋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일상적으로 AI를 사용하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려운 지점이죠.
빅테크 기업의 CEO들은 더 노골적으로, 능수능란하게 AI를 활용하는 것을 자랑합니다. NVIDIA의 젠슨 황은 "중요한 사안일 수록 같은 프롬프트를 여러 모델에 동시에 넣고, 이들이 서로의 답을 비판하게 시키며, 그 중에서 제일 나은 것을 고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기법적으로는 에이전트 AI를 묶어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게 만드는 구조에 맞닿아 있으며, 그는 이를 통해 얻은 답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답을 비판하고 검토하면서 비판적 사고를 적용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가 공개한 프롬프트 중 하나는 이런 문장으로 끝납니다. "엔지니어링 진척 상황, 파일럿 결과, 리스크를 점검하고 확률로 답해줘." 링크드인의 라이언 로슬랜스키는 "요즘 내가 보내는 거의 모든 메일이 코파일럿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는 AI에게 메일을 대신 쓰게 하는 대신, AI가 되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자기 방향과 톤을 정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대기업 총수들도 자신들의 경영 활동에 AI를 활용한다는 말을 자랑처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SK의 최태원 회장은 2026년 6월 이천포럼에서 "저 역시 에이전트를 하나가 아니라 수도 없이 만들 것"이라며, "수십 개의 회장 아바타가 각 회사에 들어가 다른 에이전트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두 달 뒤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회장은 경영진과 함께 직접 바이브 코딩 실습에 참여하고, "이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정확히 구분해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지만, 그게 단순히 'AI가 경영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로만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이들 중 누구도 AI에게 결정을 해 달라고 묻거나, 그 결정을 맡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판단을 더 날카롭게 하는 데 쓰고 있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경영 의사결정을 돕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업체 딜리전트가 2026년 6월에 진행한 조사에서도 같은 그림이 나옵니다. 미국 내 상장사 이사 104명 중 82%가 최근 6개월 사이 이사회 업무에 생성형 AI를 썼다고 답했는데, 이는 2025년 9월의 66%에서 대폭 오른 수치이기도 합니다. 이들 중 45%는 회의 준비와 동종업계 벤치마킹에, 30%는 회의록 요약에 AI를 활용한다고 응답했으며, 리스크를 다루는 이사의 37%는 경영진에게 던질 질문을 다듬는 데 AI를 썼다고 밝혔습니다. 앞선 대기업 CEO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의 활용인 것이죠. 대답의 확률을 요구하거나, 모델을 묶어 토론하게 하는 것, AI가 자신의 글을 보고 되묻게 하는 것 모두 사실은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경영자의 일 중 하나는 거칠게 말해 '한정된 인적·물적 자원으로 최대의 생산성을 내기 위해 기업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의사결정의 자원은 언제나 부족한 상태에 있습니다. 어떤 한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회사가 놓인 경영 환경 속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유의미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의견을 수집해 가려내고, 이를 자신의 의도대로 맞추며 검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보고서와 회의를 위한 시간적, 물질적, 인적 비용이 필요했고, 이를 실행하는 것조차도 비용이 듭니다(이 비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알아보기로 합시다). AI는 분명히 여기에 드는 비용을 낮추고 있습니다.
AI가 줄일 수 있는 집단적 의사결정의 비용
경영의 단계에서 AI가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일화적인 것 이외에는 아직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사결정에 AI가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실험은 몇 있습니다. 2025년 4월 미국 NBER에 올라온 실험은 P&G의 직원 776명을 AI를 쓰는 개인, 쓰지 않는 개인, AI를 쓰는 팀, 쓰지 않는 팀의 네 그룹으로 나누고 실제 제품개발 문제를 풀게 해 AI가 의사결정 품질에 미치는 영향을 살폈습니다. 그 결과는 생각보다 놀라웠습니다. 각 그룹이 내놓은 해답의 품질에서, AI를 쓴 개인이 AI 없는 팀보다 더 명목상 높은 품질의 답변을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시간 또한 16.4% 줄일 수 있었죠.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교차기능성이 구현되는 방식입니다. 이 직원들은 주로 R&D와 커머셜 담당자로 나뉘어 있었는데, AI가 없을 때는 각자가 잘 하는 해법을 내놓던 사람들이 AI와 함께 하자 배경과는 무관하게 양 쪽 모두의 균형을 잡은 안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이를 종합해 보면, 과거 조직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하나의 TFT로 엮어 일할 때의 비용보다 오히려 AI를 각자에게 던져주어 '범용적인 판단을 개인화'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면서도 균형잡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비록 이 실험은 2명으로 이루어진 팀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팀의 규모가 커진다면 어떨까요? 저는 결과가 뒤집히지 않으리라 봅니다. 상식적으로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통용되지만, 회사를 다니다 보면 팀이 커질 수록 의사결정이 어렵고 그 퀄리티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회사가 집단의 힘으로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죠. 경영학의 일부 영역에서 조직 구조에 대한 고민과 의사결정 시스템의 효율성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구글 출신의 제품 개발자 알렉스 코모로스케가 2021년에 발표한 「조정의 역풍(Coordination Headwind)」이란 자료에서, 그는 조직이 커질 수록 일이 느려지는 이유는 사람이 무능하거나 관료주의 시스템이 효율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조직이 너무 크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확률 계산에서 비롯합니다. 10명이 각자 99%의 확률로 제 몫을 해 낸다고 계산하면, 전체가 성공할 확률은 0.99^10, 약 90%가 됩니다. 각자의 확률이 95%로 떨어지면 그 확률은 약 60%가 되며, 99%를 유지하더라도 30명이 되면 약 74%, 100명이 되면 약 36%가 됩니다. 여기에, 1:1로 관리해야 할 관계의 숫자도 영향을 끼칩니다. 열 명이면 1:1 관계는 45개이지만, 백 명이 되면 4,950개가 됩니다. 관리해야 할 관계의 수가 인원의 제곱으로 늘어나는 셈이죠.
이 단순한 계산을 통해 코모로스케는, 집단 속 개인 간의 관계와 전문성을 맞추는 조정 비용이 조직이 커질수록 급격히 불어나며 결국 비효율로 치닫는다는 점을 짚습니다. 집단으로 모인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회의와 1:1, 워크숍, 공동 검토와 추적 문서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의 합리적 행동은 얼마든지 조직의 비합리로 이어집니다. 각자 자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확인을 한 번 더 요청하고, 그 결과 작은 변경에도 수많은 사람의 동의가 필요해집니다. 서로 다른 팀이 같은 목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목소리만 내게 되고, 리더는 그 모든 결과를 파악하기 어려워지며, 끝내는 실제 성과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더 큰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죠.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P&G에서 벌어졌던 실험을 다시 보면 의미심장한 지점이 생깁니다. 앞서 이야기된 2명의 팀은 서로 교차기능적인 팀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일종의 '조정 장치'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전문성을 한 데 묶어 균형 잡힌 답을 얻기 위해 만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 들이는 시간적, 정신적 비용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는 상향식이냐, 하향식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개념을 제시한 알렉스는 "형편없이 실행된 하향식 접근은 지저분한 상향식보다 훨씬 나쁘다"고 쓰기도 했는데, 이는 조정의 실패가 주는 폐해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값비싼 조정 장치보다 AI를 쓴 개인이 더 나은 결과를 냈다는 것은, 단순히 "직원 개인의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것 이상을 뜻합니다. 앞서 잠시 미뤄두었던 두 번째 비용, 즉 결정을 조직에 실어 나르는 데 드는 비용의 정체가 바로 이 조정 비용입니다. AI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정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면, 경영자에게는 이쪽이 개인의 업무 효율성보다 훨씬 큰 가치를 지닐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사회나 지루한 회의, 타운홀 미팅 대신 모두에게 AI를 하나씩 쥐어주고 각자 정보를 정리해 의견을 개진하는 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면 되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말하기엔 이릅니다.
2023년 BCG와 하버드 연구진이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특정 과제를 AI를 통해 수행하게 한 실험에서, AI가 잘 하는 영역의 과제에서는 완료 건수나 속도, 품질 등이 모두 향상되었지만, AI 능력 밖의 과제에서는 정답을 낼 확률이 오히려 19% 낮아졌습니다. 이를 놓고 이 연구는 "들쭉날쭉한 기술 경계(jagged technology frontier)"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죠.
케냐의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하버드 연구진의 실험은 더 냉정한 결과를 냈습니다. GPT-4 기반 사업 조언 도우미를 창업자들에게 붙였지만 평균 효과는 0에 가까웠으니까요. 상위 성과자의 성과가 약 15% 좋아진 대신, 하위 성과자는 오히려 8% 나쁜 결과를 냈습니다. 결국 잘 정의된 과제에서 AI는 아래를 끌어올리지만, 열린 문제에서는 판단력의 격차를 벌리게 됩니다. 그리고 경영은 대개 열린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잘못 정의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이에게 AI는 오히려 아첨과 환각으로 성과와는 정반대 방향의 확신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델 간의 격차가 낳는 품질 차이 또한 리스크에 해당합니다. 2026년 『Strategy Science』에 실린 한 연구는 34개의 AI 모델을 전략 시뮬레이션에 돌렸는데, 2024년 말에서 2025년 초의 추론 모델들은 비교군으로 잡은 MBA 학생 집단의 평균을 넘어선 반면, 2025년 중후반의 최신 모델들은 오히려 이전 모델과 MBA 학생 양쪽에 뒤처지는 결과를 냈다고 말합니다. 특히 최신 모델들이 미래 성장에 투자하기보다 핵심 사업을 착취하는 쪽으로 치우쳤다는 점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맞이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최첨단 AI 모델들이 전략적 불확실성 관리 측면에서 예상치 못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경영에 필요한 미래 예측에 대한 정확도도, 우리가 AI에 흔히 기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를 나타냅니다. 2026년 5월, 메타큘러스가 2023년부터 분기별로 인간 전문가와 AI에게 각각 미래 예측을 시킨 데 대한 11차례의 분석을 정리한 결과에서, LLM은 중간 수준의 전문가를 앞섰지만 최고 수준의 전문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더군다나 이 격차는 시간에 따라 좁혀지지 않고 점점 벌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AI가 이미 인간을 뛰어넘는 예측을 한다"는 말은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이죠.
목을 자를 수 없는 충신으로 AI를 대하기
그렇다면 경영적 의사결정과 판단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기 위해, 우리는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앞서 CEO들이 자신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과 근거, 질문이나 말투 등을 다듬는 보조적 역할에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다음 연구를 바라보기로 합시다.
2025년 『ACM TiiS』에 실린 필립 쇠네거 연구팀의 한 실험에서, 연구진은 참가자를 무작위로 나눠 AI와 함께 예측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그중 한 집단에는 슈퍼포캐스팅 기법을 프롬프트로 충실히 조율한 좋은 AI를, 다른 한 집단에는 일부러 아첨하고 과신하게 만들며 기저율을 무시하도록 지시한 나쁜 AI를 붙였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완벽한 AI와 함께 한 사람들이 더 좋은 결과를 내놓았다는 결과가 나와야 정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두 집단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습니다. 양 쪽 모두 결과로 내놓은 정확도가 24-28% 올라간 수치를 보였고, 오히려 수치로만 보면 나쁜 AI와 함께 한 쪽이 더 좋았습니다. 심지어 연구는, 모델 자체가 내놓는 답변 자체로 보면 좋은 AI 모델이 나쁜 AI 모델보다 더 정확한 답변을 내놓았다고도 설명합니다.
이 연구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다른 요인들까지 데이터로 충실히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 결과값이 시사하는 바는 뚜렷해 보입니다. 사람의 판단에 기여한 것이 AI의 정확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외부의 수치 하나가 옆에 놓이는 것만으로 사람은 자기 판단을 구조적으로 다시 검토할 기회를 얻습니다. 다시 말해 AI가 실제로 만드는 가치는 '더 나은 예측' 그 자체가 아니라 '예측을 검토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이 검토를 인간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AI와 함께하는 사람은 최고 수준의 예측자가 될 수도, 병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AI를 활용한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입니다. 앞선 딜리전트의 조사에서 리스크를 다루는 이사들이 경영진에게 던질 질문을 다듬는 데 다른 사람들보다 AI를 더 많이 썼다는 점을 생각해 봅시다. 단순히 안건을 요약하는 것보다 안건을 공략해 숙고하게 만드는 쪽이 값이 나간다는 걸, 이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투자사 오댁스 프라이빗 에쿼티 또한 같은 방식으로 AI를 판단에 활용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2026년 3월에 발표한 '컨트래리언' 혹은 '악마의 변호인'이라 부르는 도구는 자사가 진행한 25년 이상의 자체 데이터와 1,600건이 넘는 거래를 학습해, 현재의 투자 심의에서 놓치기 쉬운 리스크와 판단의 공백을 찾는다고 밝혔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반대 의견'을 내는 역할이야말로 사람이 하기 가장 어려운 지점일 지 모릅니다. 회의실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논리가 아니라 관계와 커리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계에게는 승진 욕심도 체면도 없습니다. 자를 목이 없는 셈이죠.
반대로, 도입부에서 언급한 크래프톤의 사례는 경영자가 AI를 오롯이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쓸 때 벌어지는 일을 보여줍니다. 크래프톤의 대표는 AI에게 반대를 구하는 대신 이미 마음먹은 길에 대한 동의를 구했고, 기계는 특유의 과도한 동조로 그 길을 그럴듯하게 다듬어주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군대 훈련소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르곤 합니다. "본 조교는 여러분의 행동에 따라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AI를 잘 활용하려면 스스로를 더 명확하게 벼려내는 충신으로 AI를 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반대 의견을 개진하라'는 프롬프트 한 줄을 넘어서야 합니다.
서울대 이종섭 교수는 경영 의사결정 속 AI의 역할을 다음의 두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AI의 진짜 가치는 단순 요약이 아니라 경영진 안건 뒤에 숨은 리스크를 점검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이사회는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조직이 아니라 검증하는 조직입니다."
경영 의사결정을 돕기 위한 실질적인 조언
- AI를 반대와 검증의 자리에 앉힌다. AI의 비교우위는 정답이 아니라, 사람이 미처 검토하지 못하고 빠뜨린 질문에 있습니다. 안건을 '초등학생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안건이 품고 있는 리스크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찾아내게 하는 쪽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훨씬 큰 도움이 됩니다.
- 아첨과 환각은 구조로 막는다. AI가 본질적으로 갖는 과도한 동조와 아첨은 '아첨하지 말라'는 프롬프트를 쓴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질문의 구조와 규칙으로 막아야 합니다. 이미 스스로 내린 결론이 있더라도 질문에서는 빼는 것이 좋고, 찬성 논리와 반대 논리를 함께 요구해야 합니다. 중요한 사안이라면 특성이 다른 모델의 의견을 하나 더 받는 편이 낫습니다. 젠슨 황이 모델끼리 서로를 비판하게 시키는 것도 별난 습관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좋은 방법론입니다.
- 되돌릴 수 있는 결정과 없는 결정을 나눈다. 클라르나는 AI 고객상담으로 인력을 줄였다가 품질 문제를 인정하고 사람을 다시 뽑았습니다. 반면 알고리즘으로 주택을 사고팔던 질로우는 4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안고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두 회사의 차이를 만든 것은 AI의 성능이 아니라 그 결정에 자본이 얼마나 묶여 있었는가였습니다. AI 조언의 허용 범위를 정확도가 아니라 되돌릴 수 있는지 여부로 나누는 편이 훨씬 유용합니다.
- 결정에 대한 기록을 상세히 남기고, 사후에 재평가한다. AI에게 단순히 '무엇이 좋을지'에 대한 단답을 듣기보다는, 그 결정의 전제와 근거, 기대 결과, 그리고 "무엇이 관찰되면 이 판단이 틀린 것인가"를 함께 받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 로그를 이후 진행된 상황의 맥락과 함께, 앞선 대화를 모르는 다른 AI에게 다시 검증하게 해보세요.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사후에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편향이 있지만, 기계에는 그 편향이 없습니다.
기록을 전제조건으로 삼는 데에는 또 다른 이득이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장기적으로 더 명확한 방향성의 의사결정을 위한 재료이자 데이터화의 지침으로 작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조건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기록으로 남기기 부끄러운 질문이라면, 애초에 그 결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까요.
한 걸음 더 - AI CEO, AI 이사회는 가능할까?
지금까지는 CEO나 경영 의사결정을 돕는 보조적 역할로서의 AI를 다루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경영이라는 업무 자체를 AI가 대체할 수 있을까요? 2026년 6월 30일 깃허브에 공개된 오픈이그제큐티브(OpenExecutive)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단순히 챗봇으로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돕는 것을 넘어, 아예 경영진의 의사결정 일부를 자동화 파이프라인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죠.
이 소식이 소개된 커뮤니티에는, 만든 이들이 AI 도입 과정에서 해고된 개발팀이며 "AI가 개발을 바꾼다면 경영도 바꿀 수 있다"는 취지를 담았다는 이야기가 함께 돌았습니다. AI를 앞세워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경영자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이자, 그 칼끝에서 경영자도 예외는 아니라는 메시지인 셈이죠. 다만 이 서사에는 뒷받침할 근거는 없고, SNS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개발자와 마찬가지로, 경영자 또한 대체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픈이그제큐티브는 각각 전략·재무·인사·법무·운영·마케팅·제품·이사회 소통을 맡는 여덟 개 전문 에이전트가 합의에 따라 경영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추구합니다. 일종의 AI 이사회인 셈이죠. 이들은 MBA 수준으로 학습된 각 분야의 전문 경영 지식과, 내부 온보딩 단계에서 업로드된 회사명, 산업, 성장 단계, 팀 규모, 사업 모델, 매출, 경쟁 구도, 전략적 우선순위, 컬처 덱, 피치 덱, 재무 모델, 전략 문서 등을 토대로 판단합니다. 이를 통해 일반적인 경영 상식을 넘어 해당 회사의 상황을 반영한 의사결정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어디까지나 이는 에이전트의 집합이고 AI가 내리는 결정인 만큼, 환각의 위험이 남아 있는 것은 물론 전문 법률이나 회계 서비스를 대체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두고도 상당한 갑론을박이 있었는데요, 사내 정치나 의사결정을 가로막는 부조리함 없이 목표 지향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이런 AI가 만들어내는 가치 또한 일시적이며 결국에는 여기에도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리라는 예측이 공존했습니다. 나아가 앞서 거칠게 정의한 경영자의 기능과는 별개로, 회사의 얼굴로서 고객과 공급업체, 투자사, 더 나아가 정부로까지 이어지는 관계를 구축하고 가꾸어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한데 실체가 없는 AI가 이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많았습니다. 물론 모든 기업과 정부의 의사결정이 AI로 이루어지는 미래를 전제해, AI들끼리 인간이 절대 끼어들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리라는 의견도 있었지만요.
기계의 합리성에 기대어 인공지능을 실제 의사결정의 자리에 앉히고자 했던 사례는,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있기 이전인 과거에도 존재했습니다. 2014년 5월, 홍콩의 딥날리지 벤처스가 VITAL이라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이사로 선임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나라의 회사법에서 이사는 자연인이어야 하므로 이 소프트웨어에 실제 의결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AI의 수준 또한 50여 개의 파라미터를 다루는 퍼지 로직에 불과했죠. 소프트웨어를 만든 회사는 2017년에 해산했고, 2019년에는 VITAL이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후에도 AI 붐에 따라 AI를 이사회의 멤버 내지는 CEO로 삼겠다는 선언은 여러 차례 있어 왔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2022년 중국의 게임사 넷드래곤은 '탕위'라는 AI 챗봇을 CEO로 임명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연간 30만 건 이상의 승인 양식과 50만 건 이상의 업무 알림을 발송했고, 4만명 이상의 동료에게 멘토링을 제공하는 등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업무량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는 내부 관리 측면에서의 기능으로, 이것만으로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전문가들은 과거의 데이터에 의존하는 AI가 과연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미지수라고 지적합니다.
2023년 폴란드 주류회사 딕타도르는 로봇 형태의 AI CEO '미카'를 임명했지만, 실제로 맡은 일은 술병을 디자인할 아티스트를 고르거나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등 다소 실무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드러난 기술적 한계, 그리고 질의응답 과정에서 비친 '쉼 없이 일하는 AI의 모습'은 오히려 인간 노동자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와 노동조합 대표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습니다. 쉬지 않는 AI가 쉼과 삶이 필요한 직원의 안전이나 복지를 진정성 있게 보장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죠.
경영진으로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24년 2월 아부다비의 IHC가 도입한 '에이든 인사이트'입니다. G42가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만든 이 시스템은 의결권 없는 이사회 옵서버로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데, 2025년 1분기 이사회에서 에이든이 내놓은 권고는 공개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사회 회의에서 나온 AI의 산출물이 항목 단위로 공개된 사례는 지금까지 이것이 유일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사례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실제 인간 이사나 CEO를 대체하는 수준이라기보다는, CEO라는 직함만 있을 뿐 기능에 있어서는 경영이라는 복잡한 활동의 일부분만을 담당하거나, 외부 조언자로서 자문역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죠. 이는 지금까지 다른 직종에서 AI를 다루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계에게는 물어볼 수 없는 경영의 영역들
AI가 더 발전하면 창작의 영역이 그랬던 것처럼 경영 또한 기계로 대체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계적 합리성'에 기반한 고도의 의사결정에 대한 유혹은 이전에도 있어 왔고, AI가 발전함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AI의 합리성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특이점'이 온다면, AI가 제안하는 '합리적인', 그것도 거의 거저 얻어지는 듯한 제안을 거부할 명분을 인간이 갖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경영자라는 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앞선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두 가지 방향이 보입니다. AI를 통해 경영진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수준의 의사결정 효율을 얻어 더 거대한 회사를 경영하게 되거나, 혹은 누구나 경영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분산된 AI 또는 경영 전문 AI가 그 자리를 대신하거나. 이 방향을 가르는 것은 경영자의 업무에 얼마나 인간적인 측면이 남아 있느냐일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경영에는 인간적인 관계가 중요하게 여겨지고, 얼굴을 맞대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능이 남아 있는 한 AI가 대체할 수 없는 '휴먼 터치'에 대한 니즈도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앞서 노동조합 관계자들이 'AI가 어떻게 인간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협상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질문이 바보 같아질 시대가 오더라도 질문 자체는 끝내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특히 그것이 인간의 생존과 실존에 관련되어 있다면 말이죠.
AI가 결국에는 '확률적 앵무새'라는 지적 또한 리스크입니다. 앞선 P&G 연구 결과에 조용히 들어 있는 또 다른 시사점은, AI를 쓴 해법들이 서로 더 비슷해졌다는 것입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사고의 폭을 넓혔지만 집단 차원에서는 오히려 분산을 줄이는 역할을 한 것이죠. 모두가 같은 모델에 비슷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면 그 답도 예측 가능한 범위로 수렴하게 될 것입니다. AI로 경영 이슈를 다룰수록 모두가 평준화된 결론을 따르게 되고, 결국 AI는 차별적인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가장 큰 문제, '경영의 책임'에 관한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기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경영의 의사결정은 누군가의 책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AI가 관리하는 자산이 해킹 등으로 증발했을 때의 책임은 누가 질 수 있을까요? AI가 내린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직원이 고통받았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요? 이 물음에 대한 확실한 답은 아직 없습니다. 이 '책임'의 문제야말로 AI가 아직까지 보조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의사결정의 값이 싸졌다는 것은 의사결정이 쉽고 흔해졌다는 뜻일 뿐, 좋아졌다는 뜻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수의 실험에서조차 결국 문제를 정의하고 만드는 사람은 필요했으니까요. 앞으로 회사의 명운을 가르는 것은 기계가 대준 답의 개수가 아니라, 그중에서 무엇을 고르고 무엇을 버리는가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판단력일지 모릅니다. 이 일은 인간적이기에 아직 사람의 몫이며, 아마 지금보다 훨씬 비싸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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